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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전주 비빔밥 같은 풋풋한 신혼 초

by 아니엠 2026.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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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는 신혼 초 여행했던 곳인데 부부가 되어서 하는 여행이라 사뭇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남자친구, 여자친구가 아닌 부부라는 이름의 공동체 같이 느껴졌습니다.

 

결혼식을 마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저희 부부는 전주로 향했습니다. 화려한 해외 신혼여행 대신 국내를 택한 데에 거창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다만 결혼식 준비로 몇 달을 정신없이 보낸 터라, 비행기를 오래 타는 일정보다는 가까운 곳에서 둘이 조용히 쉬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습니다. 남편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여행사 상담을 몇 군데 받아 보긴 했지만, 결국 지도를 펴 놓고 기차로 갈 수 있는 곳들을 손으로 짚어 보다가 전주로 정했습니다.

어디를 가느냐보다 이제 막 부부가 된 두 사람이 처음으로 함께 떠난다는 사실이 더 크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전주 비빔밥 같은 풋풋한 신혼 초
전주 비빔밥 같은 풋풋한 신혼 초

 

 

한옥마을에서의 첫 밤

 

기차역에 내려 숙소로 가는 길, 저녁 공기가 꽤 선선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캐리어를 끌고 한옥마을 골목으로 들어서자 낮은 기와지붕들이 줄지어 있었고, 가로등 불빛 아래로 처마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결혼반지를 낀 손으로 캐리어 손잡이를 잡고 있으니 그제야 결혼했다는 실감이 조금씩 났습니다.

남편은 골목이 마음에 드는지 계속 두리번거리며 걸었고, 저는 그런 뒷모습을 보며 웃었습니다.

숙소는 오래된 한옥을 개조한 곳이었습니다. 마당에 작은 평상이 놓여 있었고, 방에 들어서자 나무 냄새가 은은하게 퍼졌습니다.

이부자리를 봐주시던 주인분께서 신혼여행이시냐고 물으셨을 때, 괜히 부끄러워 대답을 얼버무렸던 일이 있었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 민망해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귀엽다는 생각이 듭니다. 짐을 풀고 나니 이미 늦은 시간이라 멀리 나가지는 못했고, 근처 골목을 잠시 걷는 것으로 첫날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사실 그때는 피곤함이 커서 야경을 오래 즐기지는 못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조금 아쉬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다음 날 아침은 마당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주인분이 내어주신 조식을 평상에 앉아 먹었는데, 아침 햇살이 기와지붕 사이로 비스듬히 들어오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남편은 원래 아침잠이 많은 편인데 그날따라 일찍 일어나 마당을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낯선 곳에서 맞는 첫 아침이라 그런지 둘 다 평소보다 말수가 적었고, 대신 눈이 마주칠 때마다 괜히 웃음이 났습니다.

밥을 먹으면서도 오늘은 어디부터 걸을지, 몇 시쯤 숙소로 돌아올지 같은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런 시시콜콜한 대화가 오히려 여행 일정 속에서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아침을 먹은 뒤에는 한복을 빌려 입고 마을을 걸었습니다. 태어나 처음 입어보는 한복이라 걸음걸이가 어색했는데, 남편이 옆에서 자꾸 웃어서 민망하기도 했습니다.

대여점 주인분이 옷고름을 매어 주시며 신혼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셨는데, 그 한마디가 생각보다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좁은 골목을 지나 경기 전 쪽으로 걸어가는 길에는 오래된 소나무들이 늘어서 있었고, 그 사이로 걸으며 사진을 몇 장 찍었습니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남편인데 그날은 순순히 카메라 앞에 서 주었습니다.

걷다가 전동성당 앞을 지나기도 했는데, 붉은 벽돌 건물이 한옥들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그냥 평범한 붉은 벽돌인데 이곳의 분위기 자체가 워낙 고즈넉하보나보니 조금 튀었던 것 같습니다.

성당 앞 계단에 나란히 앉아 잠시 쉬어 가며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던 시간도 좋았습니다.

 

 

골목 안 작은 소품가게

 

경기 전을 돌아 나오는 길에는 한지로 만든 소품을 파는 작은 가게에 잠시 들렀습니다.

손바닥만 한 공책과 부채, 색색의 한지 조각들이 좁은 매대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딱히 살 생각은 없었는데 남편이 한지로 만든 작은 액자 하나를 골라 들더니, 신혼여행 기념으로 하나쯤 사자고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평소 이런 것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라 조금 의외였습니다.

가게 주인분이 포장을 해 주시는 동안 둘이 나란히 서서 기다리던 시간도 얼마나 알콩달콩한지, 그때는 그냥 쳐다만 봐도 너무 좋았습니다.

지금의 배불뚝이 남편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멋있지는 않지만 큰아들같이 친근함은 더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액자는 지금도 신혼집 거실 한쪽에 그대로 걸려 있는데, 볼 때마다 그날 골목의 냄새와 공기가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점심으로는 전주비빔밥을 먹었습니다.

놋그릇에 담겨 나온 밥 위로 여러 나물이 색깔별로 올라가 있었고, 이를 젓가락으로 섞으며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맵지 않게 잘 비벼 먹었던 것 같은데, 재료 하나하나의 맛이 살아 있어서 감칠맛이 느껴졌습니다.

전 원래 매운 음식을 좋아해서 청양고추나 고추장을 많이 넣어서 먹는데 전주비빔밥을 먹은 후로는 재료의 신선함을 느끼기 위해 매운 소스의 양을 줄이는 버릇이 생겼답니다.

남편은 평소 나물을 즐기지 않는 편인데 그날은 그릇을 깨끗이 비웠습니다. 신혼여행이라는 분위기 때문인지 평소보다 입맛이 관대해진 것 같기도 했습니다.

식당을 나서면서 다음에 또 오면 꼭 이 집을 다시 찾자고 둘이 약속 아닌 약속을 했던 아기자기한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오목대에서 내려다본 풍경

 

오후에는 오목대로 향했습니다. 계단을 올라가는 길이 생각보다 가팔라서 숨이 조금 찼지만, 정상에 올라 내려다본 한옥마을 풍경은 그만한 값어치가 있었습니다.

낮은 기와지붕들이 겹겹이 이어진 모습을 남편과 나란히 서서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결혼이라는 게 결국 이런 시간들이 조용히 쌓여가는 일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내려오는 길에는 올라올 때보다 발걸음이 가벼웠는데, 힘든 만큼 본 풍경이 아까웠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녁에는 남부시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해가 지고 나니 시장 골목마다 불빛이 켜지기 시작했고, 다양한 먹거리 냄새가 골목을 채웠습니다. 남편과 함께 순대와 전을 나눠 먹었고, 자리를 옮겨 막걸리 골목에서 막걸리도 한 잔씩 나누었습니다.

 

커다란 양은 주전자에 담겨 나온 막걸리와 한 상 가득 차려지는 안주들이 신기해서 남편과 계속 사진을 찍었습니다.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마주 앉아 있으니 결혼식 당일보다 오히려 지금이 더 실감 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도 비슷한 마음이었는지 평소보다 말이 많아졌고, 시장을 나설 때는 두 손 가득 다음 날 아침에 먹을 주전부리까지 챙겨 나왔습니다.

 

이튿날 아침에는 일찍 짐을 챙겨 나섰습니다.

떠나는 길에 골목을 한 번 더 돌아보았는데, 이틀 사이 정이 들었는지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캐리어를 끌며 앞장서 걷는 뒷모습을 보다가, 이제부터 이런 뒷모습을 오래 보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거창한 계획 없이 다녀온 짧은 여행이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마음에 더 오래 남는 것 같습니다.

기차를 기다리며 플랫폼에 서 있던 그 아침의 공기가 지금도 가끔 떠오릅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풋풋한 모습이었습니다.

지금 우리 부부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때의 모습이 있었기 때문에 평생 든든한 내편의 편안함이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