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

십년만에 아이 없이 떠난 경주

by 아니엠 2026. 9. 7.
반응형

경주하면 떠오르는 것이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 가서 수련회 하고 저녁밥으로 먹었던 맛없던 카레가 기억이 납니다.

학창 시절의 추억과 함께 최근에 경주의 아름다운 여행 한 페이지가 생겼는데 그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결혼기념일 10주년이 얼마 전이었는대요.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는지 바쁘게 살다 보니 결혼하고 십 년이 지났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더라고요.

직장을 다니면서 이런저런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다 보니 정신없이 어느새 십 년째 여름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먼저 얘기를 꺼내더라고요.

어디든 좋으니 둘이서만 며칠 다녀오자고요.

결혼 10주년이니 오랜만에 해외도 고민했지만, 아이 없이 떠나는 여행 자체가 오랜만이라 큰 욕심부리지 않고 가까운 국내로 정하기로 했습니다. 여러 여행 후보지가 있었는데 우리는 경주 여행을 선택했습니다.

한국 내에서도 경주는 단아하고 조용한 멋이 풍기는 게 우리의 결혼 10년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멀리 가지 않아도, 낯설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그저 둘이 손잡고 천천히 걸을 수 있는 곳이면 충분했습니다.

경주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평일이라 그랬는지, 아니면 계절 탓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거리에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남편과 저는 그게 오히려 좋았습니다. 결혼식 이후로 이렇게 목적 없이 걸어본 적이 있었나 싶었습니다.

 

십년만에 아이 없이 떠난 경주
십년만에 아이 없이 떠난 경주

 

 

낮과 밤이 다른 얼굴 대릉원

 

첫날 오후에는 대릉원부터 들렀습니다.

이름에서 한눈에 알 수 있듯이 경주의 랜드마크 중하나인 큰 무덤이 모여있는 곳입니다.

무덤이라고 해서 초등학교 때 무서워하던 공동묘지를 생각하시면 오산입니다.

왕과 왕실의 무덤이기 때문에 사뭇 외국인들이 봤을 때에는 큰 동산과 같이 웅장한 곳이니까요. 커다란 무덤들이 잔디밭 위에 봉긋봉긋 솟아 있는 풍경이 낯설면서도 편안했습니다.

남편은 무덤이 이렇게 크다는 걸 처음 알았다며 신기해했습니다. 저는 그보다 사람 없는 산책로가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걷다가 다리가 아프면 아무 벤치에나 앉아 쉬었고, 딱히 대화가 없어도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십 년을 함께 산 부부의 침묵이란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냥 별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편안하고 안정된 느낌이 좋습니다.

저녁이 되어 다시 그 근처를 지나가는데 낮에 본 것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무덤 사이로 조명이 은은하게 켜지고, 능선의 곡선이 어둠 속에서 훨씬 부드럽게 보였습니다.

남편이 사진을 몇 장 찍자고 했는데, 저는 사진보다 그냥 눈에 담고 싶었습니다. 나중에 후회했습니다.

사진 한 장쯤은 남겨둘 걸 그랬다고요.

 

 

 

 

첨성대와 불국사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첨성대에 들렀습니다.

생각보다 크기가 아담해서 조금 놀랐습니다. 남편은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작다며 웃었습니다.

저는 이 오래된 돌탑이 천 년 넘게 그 자리를 지켰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우리가 십 년을 겨우 함께했다고 호들갑을 떠는 게 조금 민망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날 밤 숙소는 한옥을 개조한 곳이었습니다.

방바닥이 따뜻하게 데워져 있어서 남편과 나란히 누워 오랜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런 온돌방이 얼마만이었는지 요즘은 아파트 지역난방이기 때문에 접할 수가 없는대요. 찜질을 좋아하는 저에게 이렇게 뜨끈한 방바닥은 천국이 따로 없었습니다.

신혼 때는 어땠는지, 앞으로 십 년은 또 어떻게 살아갈지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특별할 것 없는 대화였지만 그 시간이 이상하게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둘째 날은 아침 일찍 불국사로 향했습니다.

계단을 오르며 청운교와 백운교를 지나는데, 남편이 이 다리가 원래 사람이 밟고 다니던 곳이 아니라는 설명을 어디선가 읽었다며 들려주었습니다. 저는 그런 세세한 정보보다 절 마당에 서서 올려다본 하늘이 유독 맑았던 것이 더 인상 깊었습니다.

다보탑과 석가탑을 나란히 보면서, 이렇게 오래된 것들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작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석굴암까지는 산길을 따라 올라가야 했는데 생각보다 힘이 들었습니다.

평소에 운동을 안 한 티가 났습니다.

남편이 먼저 지쳐서 몇 번이나 쉬어가자고 했는데, 정작 힘들어한 건 저였던 것 같습니다.

본존불 앞에 섰을 때는 유리벽 너머로 봐야 해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조금 더 가까이서 표정을 자세히 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황리단길의 저녁

 

여행의 마지막 저녁은 황리단길에서 보냈습니다. 요즘에 길에 무슨 '단길'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이 유행인데요.

이곳도 그런 유행을 반영하여 번화가를 황리단길로 탈바꿈하여 젊은 세대의 발길을 이끌고 있더라고요.

서울의 번화가길과는 다르게 황리단길은 오래된 한옥 사이사이로 작은 가게들이 늘어서 있는 거리였습니다.

관광지 특유의 들뜬 분위기와 조용한 한옥 마을의 정취가 잘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남편과 저는 손을 잡고 특별한 목적 없이 골목을 걸었는데 그 느낌은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주변의 고즈넉한 경치와 함께 평생 짝꿍과 걷는 시간은 너무 안정되고 편안한 기분이었습니다.

이 거리에서 파는 빵을 하나씩 사서 걸으며 나눠 먹었는데, 달큼한 맛이 오래도록 입안에 남았습니다. 걷다 지치면 아무 카페에나 들어가 앉았습니다.

카페를 몇 군데 갔었는데 가는 곳마다 이곳의 시그니쳐인 경주십원빵이 디저트로 나와서 원 없이 먹어보았습니다.

그리고 말차라테를 시켰는데 대릉원을 본떠서 라테 위쪽에 말차가루를 잔디로 표현하고 휘핑크림을 둥굴이 모양을 잡아서 봉분으로 표현한 것은 너무 신선했습니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남편과 별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결혼기념일이라고 해서 거창한 이벤트를 준비한 것도 아니었고, 그저 서로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게 이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이었습니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남편이 다음 십 년도 이렇게 같이 걸어가자고 했습니다. 저는 대답 대신 웃었습니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습니다.

경주의 오래된 돌담과 무덤들 사이를 걷던 그 며칠이, 앞으로도 종종 꺼내 보게 될 조용한 장면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남들에게는 여행하는 부부의 모습이었겠지만 저희 둘에게는 이 짧은 시간이 우리 사진첩의 한 페이지로 남는 추억으로 새기는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