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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그라나다 알바이신 골목에서 보낸 하루

by 아니엠 2026.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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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적이었던 2002 한일 월드컵의 열기가 막 끝나갈 때쯤 저는 친구 두 명과 함께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습니다.

우선, 저는 월드컵을 개최한 해에 학기를 마치고 휴학을 했습니다.

전국의 월드컵 경기에 쫓아다니느냐고 학점이 엉망이어서 유급위기에 처해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그때 상암 월드컵 경기장을 같이 지킨 그 2명의 친구도 저와 비슷했기 때문에 방학 동안 카페 아르바이트를 해서 여행을 계획한 것입니다. 원래 일정에는 그라나다가 없었습니다.

세비야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다른 여행자가 알람브라 궁전 이야기를 하도 열심히 하기에, 다음 날 아침 셋이서 급하게 기차표를 바꾸고 그라나다행 기차에 올랐습니다.

계획에 없던 도시라 숙소도 기차 안에서 부랴부랴 예약했던 기억이 납니다.

예약 사이트를 뒤적이며 셋이 각자 다른 후보를 들이밀다가 결국 가장 저렴한 도미토리로 정했는데, 그 결정이 나중에 후회로 돌아올 줄은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라나다 알바이신 골목에서 보낸 하루
그라나다 알바이신 골목에서 보낸 하루

 

기차역에 내려서 겪은 작은 소동

기차역에 내려 숙소까지는 걸어서 이동했습니다.

배낭이 무거워 택시를 탈까 잠깐 고민했지만, 셋 다 여행 경비를 아껴야 하는 처지라 결국 걷기로 했습니다.

역에서 시내로 들어갈수록 건물들이 낮아지고 골목이 좁아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큰길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좁은 돌길이 이어졌고, 흰 벽에 화분을 매달아 둔 집들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친구 하나가 지도 앱도 없이 종이 지도 한 장만 들고 앞장서다가 세 번쯤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결국 숙소를 찾는 데만 한 시간 가까이 걸렸고, 도착했을 때는 다들 땀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도미토리에 짐을 풀고 보니 화장실 물이 잘 안 내려가서 셋이 번갈아 가며 씨름을 해야 했습니다.

싼 숙소를 고른 대가라며 서로를 탓하다가 결국 웃어넘겼던 기억이 납니다.

1년 전쯤에 여행을 갔는데 숙소가 생각했던 것과 달라서 주인과 싸우며 환불을 받아낸 저로서 나이가 든 지금, 돈을 더 준다고 해도 그런 곳에서 잠을 청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싼 숙소에서 제대로 쉬지도 못했는데 친구들과 하하 호호 웃어넘길 수 있는 것은 20대에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순수하고 긍정적이게 넘어갈 수 있는 나의 20대 여유로운 모습이 그립기까지 합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나서 오후 내내 알바이신 지구를 걸었습니다.

이 동네는 예전에 이슬람 세력이 이베리아 반도에 남아 있던 시절의 흔적이 그대로 남은 곳이라고 들었습니다. 골목이 미로처럼 얽혀 있어서 걷다 보면 방향 감각이 자꾸 흐트러졌습니다.

친구들과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마다 그냥 눈에 보이는 오르막을 따라 올라갔습니다.

오르막 끝에서 만난 작은 성당 앞 계단에 앉아 물을 나눠 마시며 잠깐 쉬었던 순간이 유독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계단 옆 작은 상점에서는 지역 특산품이라는 도자기 그릇들을 팔고 있었는데, 배낭 무게 때문에 결국 아무것도 사지 못하고 눈으로만 구경했습니다.

걷다 보니 집들 사이로 언뜻언뜻 알람브라 궁전의 붉은 성벽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낮은 담장 너머로 궁전이 보일 때마다 셋이 동시에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었는데, 지금 앨범을 열어 보면 비슷한 각도의 사진이 열 장도 넘게 남아 있습니다.

그때는 그게 그렇게 신기했습니다. 골목 중간중간에는 빨래를 널어 둔 창문도 많았고,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라디오 소리가 골목을 타고 울렸습니다.

 

산 니콜라스 전망대에서 본 알람브라

알바이신 지구의 끝자락에는 산 니콜라스 전망대라는 곳이 있습니다.

해가 기울기 시작할 무렵 그곳에 도착했는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낮은 담벼락에 걸터앉아 있었습니다.

자리를 잡지 못해 서서 봐야 했지만 크게 아쉽지는 않았습니다. 눈앞으로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배경으로 알람브라 궁전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붉은 벽돌 성벽이 노을빛을 받아 점점 진한 주황색으로 물드는 모습을 친구들과 나란히 서서 오랫동안 바라보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누군가 기타를 치고 있었고, 근처에서는 여행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딱히 특별한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닌데, 그 순간의 공기만큼은 지금도 또렷하게 떠오릅니다.

다만 그날 알람브라 궁전 내부까지는 들어가 보지 못했습니다.

미리 예약을 해두지 않은 탓에 입장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결국 바깥에서 성벽만 올려다보고 돌아섰는데, 그 부분은 지금 생각해도 조금 아쉽습니다.

친구 하나는 다음에 꼭 다시 와서 안까지 들어가 보자고 했지만, 그 약속은 아직 지키지 못했습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는 일부러 알카이세리아 쪽 골목을 지나왔습니다.

예전에 실크를 팔던 시장이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는데, 좁은 골목 양옆으로 색색의 스카프와 자수 천을 늘어놓은 가게들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한낮의 볕이 워낙 뜨거워서 그늘을 골라 딛듯이 걸었던 기억이 납니다.

친구 하나는 더위에 지쳐 아무 가게 문 앞에나 주저앉고 싶다고 투덜거렸고, 나머지 둘은 그런 친구를 놀리면서도 결국 근처 그늘에서 함께 쉬었습니다.

상인들이 호객을 하는 목소리와 관광객들의 발소리가 뒤섞여 골목 전체가 웅성거렸는데, 그 소란스러움조차 지금 떠올리면 나쁘지 않은 소음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골목을 벗어나 조금 더 걸으니 좁은 광장이 나왔고, 분수 주변에 앉아 있던 노인 몇 명이 우리를 흘끗 쳐다보다가 다시 자기들끼리의 대화로 돌아갔습니다.

그 무심한 시선조차 낯선 도시에 섞여 들어가는 기분이 들게 했습니다.

 

타파스 한 접시로 채운 저녁

저녁은 대부분 타파스로 해결했습니다.

그라나다에서는 음료를 하나 시키면 작은 타파스 한 접시가 같이 나오는 곳이 많다고 들어서, 우리는 저녁마다 이 골목 저 골목을 옮겨 다니며 한두 접시씩 먹었습니다. 정확히 무슨 음식이었는지는 가게마다 달라서 기억이 뒤섞였지만, 감자로 만든 요리와 해산물을 얹은 빵 조각이 유독 입에 맞았던 기억이 납니다.

얼마 전 그때의 타파스가 그리워 회사 근처에 판매하는 집을 찾아보았습니다.

나름 서울 명동의 전국에서 손꼽히는 맛집이었는데, 그때의 그 타파스 맛은 나지 않았습니다.

그때 먹었던 것은 맛집도 아니고 유명한 셰프가 요리한 것도 아닌데 말이죠.

아마 저는 타파스가 먹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 시절 친구들과 여행비를 아끼기 위해 나누어 먹던 투박한 추억이 그리웠던 것 같습니다.

셋이서 저녁값을 아낀다고 좋아했던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배낭여행자에게는 이런 소소한 절약이 꽤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한 가게에서는 주인이 서툰 영어로 이것저것 설명을 해 주었는데, 손짓 발짓을 섞어 가며 대화를 나누던 그 시간이 오히려 더 즐거웠습니다.

마지막 날 밤에는 사크로몬테 쪽으로 걸어 올라가 동굴에서 하는 플라멩코 공연을 보았습니다.

좁은 동굴 안에 의자를 다닥다닥 붙여 놓은 자리에서 연주자와 무용수의 숨소리까지 들릴 만큼 가까운 거리였습니다.

화려한 무대 장치도 없었고 조명도 단출했지만, 발 구르는 소리와 손뼉 소리만으로 공간이 꽉 채워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무용수의 표정이 워낙 진지해서 셋 다 숨죽이고 지켜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공연이 끝나고 나와서 본 그라나다의 밤하늘은 도시의 불빛 때문인지 별이 그리 많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언덕을 내려오며 셋이서 나눈 대화는 꽤 오래 이어졌습니다.

앞으로 어떤 어른이 되어 있을지, 졸업하고 나면 각자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같은 시답잖은 이야기들이었는데, 이상하게 그 대화만큼은 아직도 토막토막 기억이 납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다시 배낭을 메고 다른 도시로 떠났습니다.

기차가 출발하고 창밖으로 멀어지는 알함브라의 성벽을 보면서, 그때는 몰랐지만 그 골목들을 다시 걸어 볼 일이 쉽게 오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이렇게 몇십 년 전의 여행기를 써내려 가다 보니 2002 한일 월드컵이 너무 고맙습니다.

그때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이 열리지 않았더라면, 저는 무난하게 대학교 성적을 가지고 휴학을 하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젊은 시절 한국 개최 월드컵의 열기로 유급 위기에 처해졌고 휴학해서 이렇게 멋진 그라나다를 볼 수 있는 건 제 인생의 손꼽히는 행운인 것 같습니다.